2022년 여름, 현재 나의 IT 개발자로써의 밥벌이는 만 22년을 꽉 채우고, 23년차로 접어들고 있다.
가끔 프로 축구 선수, 프로 야구 선수가 은퇴 후 10년 만에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은퇴 이후 한번도 축구공을 차지 않았다. 은퇴 이후 한번도 야구공을 던져 보지 않았다.
이런 인터뷰 내용이 많다.
나도 23년 동안 한 분야에서만 일하다보니 모니터 화면의 코드를 보면서 키보드 타이핑하기가 점점 싫어진다.
23년간 일하는 사이에 개발 언어(Programming Language)도
C 언어 -> PHP -> JAVA -> Perl -> R -> Python -> Go
이 순서로 바꾸면서 개발해왔다.
이제는 소스 코드를 작성하다 보면, 여러 Programming 언어의 문법이나 흐름이 뒤죽박죽 섞여서 머릿속에 그려지다보니
Editor만 바라봐도 짜증이 확 밀려온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개발 언어를 쓰다보니, 구현의 깊이가 낮아지는 느낌이다.
22년간 어떤 일들이 있었나...
시간 순으로 있었던 굵직했던 이벤트를 보면,
2000년 9월 W 회사 입사.
2000년 11월 첫 프로젝트 개발 완료 - 한글.COM 도메인 등록 & 관리 시스템
2002년 무선 숫자 도메인(WINC) 등록 시스템 개발
2003년 9월 T 회사 입사 (이동통신시스템 개발 회사)
2003년 10월 NPDB(011, 016, 017, 018, 019 등 이동통신 번호 이동 시스템) 개발
2005년 HA 솔루션 개발 (서비스의 고가용성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개발)
2010년 파자마5 모바일 App 개발
2011년 Hetero-GW 개발
2012년 MWC 2012 이종망 GW 출품 (아래 사진이 그때 개발해서 전시한 시스템)
2013년 DPI(Deep Packet Inspection) 시스템 개발
2015년 Machine Learning, Deep Learning 기술을 이용한 장애 예측 시스템 개발
2017년 Linux Container를 이용한 Container Platform 설계 및 Demo 시스템 개발
2018년 Data Center 가상화 관리 시스템 개발(일명, XOS) + Open Networking OS
2019년 상반기 5G NRF 개발
2019년 하반기 휴직 (건강 문제 발생, 반년 정도 병원 다니면서 요양)
2020년 Kubernetes Cluster에 Deploy할 CNF 개발
2021년 Container Platform 구축을 위한 TF 리딩
2022년 Container Platform 도입 프로젝트
이미 2018년에 정신 건상에 문제가 생겼고, 2019년 봄부터 정신건상의학과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제대로 병치레를 하고 보니 아플 때는 빨리 전문의를 찾아가서 상담하고 정밀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직장인 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병 때문에 치료를 망설이는 직장인이 있다면, 빨리 병원부터 가기를 추천한다.
신입 사원이었을 때 마음가짐 vs. 지금의 마음가짐
신입이었을 때 나의 마음.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같다.
내가 제일 똑똑한 것 같다.
내가 제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잘 하고, 똑똑한데 왜 연봉을 쪼금 주지...?
직장 생활 22년이 넘은 지금의 마음가짐
20년차가 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23년차까지) 나의 마음은
나 빼고, 동료들은 다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있는 회사는 대체로 농땡이 부리는 동료가 없이 평균적으로 근면하고 성실해서 더욱 이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다.)
"내가 프로젝트에서 도움이 되고 있는건 맞나?" 라는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매일 자책하는 것이 일...)
이미 출근하면서 하루동안 쓸 에너지 중에서 50% 정도는 소비하는 것 같다. (즉, 체력이 바닥이라는.... ㅠㅠ)
출근해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것만해도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다.
1년만 더 버텨보자. (이런 생각으로 3년째 버티는 중이다 ㅠㅠ) 진짜 올해가 IT 개발자로써 일하는 마지막 해일까...?
아무튼 23년차가 되니까 몸도 힘들고 마음가짐도 무겁다.
결혼 그리고 출산, 육아
나는 결혼을 일찍했다.
대학교 졸업 후 1년 뒤. 만 26세에 결혼했다.
아내와 나는 동갑이고 심지어 생일도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생일 파티도 한날 몰아서 한다.)
아내를 학생일 때 만나서, 졸업하고 1년 뒤에 결혼했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된 것 없이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 나이 만 27세일 때, 첫째 아기가 생겼다. 그리고 2년 뒤 둘째 아기, 그리고 또 3년 뒤에 세째 아기.
이렇게 나와 아내를 닮은 아들과 딸이 나에게 왔다.
지금 결혼한지 19년이 되었고, 되돌아 생각해보면 순간 순간에는 힘든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결혼한 것을 참 잘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나를 닮은 2세가 있다는 것은 더욱 기쁘다.
결혼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이 나에게 결혼하는게 좋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확실하다.
" 이 여자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할 수 있고, 그 희생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결혼하고 그런 생각이 없다면 하지 말라! "
내가 결혼할 때, 내 마음 속 다짐이 딱 위 문장과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19년 동안 살아보니, 편한 것보다는 불편함이 많고 몸이 고단하거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도 많이 생긴다.
그런데 애초에 이 여자를 즐겁고 행복하게만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감내하리라 마음 먹어서 그런지, 힘든 순간이 딱 지나고 나면 행복은 몇배가 되는 느낌이다.
육아도 비슷한 것 같다.
아기 였을 때 한없이 귀엾고 예쁘다가, 아이가 점점 크면서 아이의 고집과 일탈로 아빠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아기에게 사회적 잣대(예를 들어, 학교성적 같은 것)를 들이밀고 보기 시작하면, 부모는 초조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건강과 웃음만 있다면, 나머지는 하늘이 주는 대로 받자 !!!
특히 학교 공부, 입시에 관해서는 입에 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것 때문에 친한 이웃들에게 "무심하고, 무책임한 부모"라는 소리도 몇번 들었다.
학원 안 다니는 중,고등학교 자녀가 어디있냐고?
아이가 싫어하는데, 굳이 학원에 보낼 필요가 있을까.
음악이 좋다고 하면, 악기 사주고
PC 게임이 좋다고 하면, PC 게임 사주고
놀러 가고 싶다면 놀러 가주고
사회적 책임이 덜한 나이일 때, 어디에 속박당하지 않고 자유를 느끼면서 놀게 해주고 싶었다.
2000년, 2010년, 2022년의 직장 생활. 무엇이 다를까?
나는 2000년에 가장 Hot했던 IT 회사에 입사했기에 분위기 자유롭게, 적당히 급여 괜찮았고, 상하/위계 질서가 없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내 개인적으로는 2022년보다는 2000년의 내가 다녔던 W회사가 더 분위기가 자유롭고 출/퇴근 및 업무 시간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입사 1년차인 신입사원이었는데도 눈치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로 보았을 때, 아래와 같이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주6일 근무 ㅠㅠ
이거 실화냐? 어떻게 주 6일을 출근할 수 있냐?
(근데 나는 주 1~2일 정도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주6일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IT는 3D 중에서 극한 직업군 ㅠㅠ
2000년은 아직 IT 개발 인프라, 플랫폼이 별로 없고, 심지어 협업에서 참고할 도서, 웹 검색기도 변변치 않았다.
그런 반면, 중공업 경공업 같은 공장 시스템에 익숙한 경영자가 IT 회사를 경영하면서 업무량으로 압박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렇다보니 IT 개발자들은 과중한 업무량에 치이고, 밤 11시~새벽 3시 까지 일하는 야근은 일상이었다.
애초에 기한내에 할 수 없는 업무량, 업무 난이도 였기 때문에 결국에 프로젝트 완료일에 일을 못 끝내서 또 잔소리 듣고... ㅠㅠ
나쁜 상황이 돌고 돌게 된다.
이런 근무 환경이 사회 전반적으로 알려지면서 IT 관련 전공을 하려는 학생이 줄어들고, 대학 입시에서도 홀대 받는 것 같았다. (참고로, 1990년 초/중반에는 대학교 전공에서 "전자" "컴퓨터" 이런 문구만 들어가도 대입 성적 상위 1~2%의 학생이 몰리는 현상이 있었다. 지금은 입시생들이 이런 과거의 분위기를 못 믿겠지만...ㅠㅠ)
Stock Option은 유행어처럼 난무했지만, 실제 Stock Option을 행사해서 돈 번 사람은 못 본.... ㅠㅠ
회사 생활과 가정 생활의 균형점을 찾기
회사 생활과 가정 생활의 균형점(흔히 말하는 워라밸)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지나온 20년을 뒤돌아보면
직장 생활, 경제 활동(돈 버는 일)에 더 에너지를 많이 쓴 것 같다.
동년배들보다 일찍 진급하고, 연봉 조정을 위한 평가도 매년 꾸준하게 최고 등급(Special Grade)을 받고, 이런 저런 회사의 포상도 대부분 다 받고... 그런데 이렇게 회사 생활, 경제 활동에 집중하면서 가정 구성원에 대해 소홀하지 않았나하는 후회감이 든다.
나는 3년 전부터 공황장애를 치료 중에 있고, 차츰 공황장애에 대한 치료는 잘 되고 있지만 여전히 치과를 가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참고로, 정신과 치료가 3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고, 공황장애 증세가 일상생활을 못하게 할 정도로 심해진 것은 지금보다 5년 전쯤이다)
나는 이 공황장애 때문에 치과 스케일링을 5년 넘게 포기 상태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치료를 위해 치과를 가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치과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ㅠㅠ
이번 주에 나에게 바로 치과를 방문해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회사에서 점심 식사를 하다가 22년 전에 씌운 금니가 떨어졌다.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떨어진 금니를 치과에 가지고 가면, 바로 다시 붙여줄거야.
"1~2분이면 치료가 끝날 테니까 공황장애가 있어도 문제가 될게 없을거야."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치과에 가서 떨어진 금니를 같은 위치에 붙여보니 들뜨는 현상이 생겼다.
결국 다시 기존 금니가 붙어 있던 위치를 새로 갈아내고, 새 틀을 뜨고 새 보형물을 넣어야 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즉, 내가 예상했던 진료 시간인 2분보다 훨씬 치료 시간이 길어졌다.
치과에는 다른 환자도 한 명 더 있어서 의사는 나와 그 환자 사이를 왔다 갔다하면서 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치과 진료실이라는 낯선 공간, 그리고 옆 환자를 치료하면서 발생하는 석션 소리, 드릴 소리를 계속 듣고 있다보니 결국 공황장애(패닉)이 터졌다.
처음 10초 동안 호흡이 어려워지더니 갑자기 온몸에 전기가 감전된 것처럼 피부의 쓰라림까지 온몸에 퍼졌다.
도저히 치과 진료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든 지경이 되었다.
간호사를 호출하고 바로 진료실에서 대기실로 이동했다.
패닉 증세가 조금 진정되었지만, 여전히 호흡은 어려웠다. 심장도 미친 듯이 뛰고 있다. 근육은 마라톤을 뛴 직후처럼 힘이 쭉 빠졌다.
간호사와 의사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오늘 진료를 못 끝냈지만, 나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진료비는 다 내고 이틀 후에 다시 방문하겠다고 했다.
간호사는 기본 진료비만 내도 된다고 했고, 공황장애 증세가 있으면 진료 중간에 외출했다가 진정되면 다시 진료실에 와도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어째든 집에 와서 다시 공황장애에 대해 생각해봤다.
치과 치료를 피할 수만 없는 것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
나의 치과 진료 대처 방법
치과 진료를 받기 전에 공황 발작(Panic) 증세를 진정시키는 약(벤조디아제핀계 약물, 예: 알프라졸람)을 5시간 전에 1번, 1시간 전에 1번 복용해보자. 내 경험상, 3~4시간 간격으로 복용하는 것이 효과가 좋았다. 그리고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공황 발작이 예상되는 일(치과 진료, 비행기 탑승, 터널 진입 등)이 있기 1~2시간 전에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내가 진료받고 있는 정신과 의사님의 말씀]
치과 진료 의자에 오래 대기하는 경우에 패닉이 발생하니까, 의자에 등대고 오래 앉지 말고 진료 대기 중에는 회사나 집 의자에 앉는 것처럼 편한 자세로 앉고, 스트레칭을 하자. (의사, 간호사에게는 진료 접수할 때 미리 공황 장애 환자라고 알려주면 진료 의자에서 움직여도 이해해준다)
드릴을 사용할 때, 물을 뿌리고 석션하는 것이 은근히 패닉을 유발한다. (상상만 해도 패닉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음) 그래서 나는 치과에 방문하기 하루 전부터 치과 진료 의자와 비슷한 기울기로 상체를 기울이고 입을 크게 벌리고 호흡 및 침 삼키기 연습을 한다. 즉, 시뮬레이션을 이틀 정도 해보는 것이다. --> 내 경우에 이 연습이 공황 장애를 감소시키는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얼굴을 덮는 수건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한다. 접수할 때 간호사에게 미리 얘기하면, 의사 옆에서 간호사가 얼굴에 수건을 덮는 대신 옷 주변만 수건을 덮어준다. --> 얼굴만 안 덮어도 훨씬 공포감이 줄어든다.
치과는 사람을 상대하는 곳이다보니, 내가 불편하고 힘든 곳이 있으면 잘 응대해준다. 즉, 공황 장애가 있다고 진료 접수할 때 얘기하면 많은 배려를 해준다. 너무 진료 의자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도 내려 놓아도 된다. 패닉 증상이 시작될 때 잠시 밖에서 심호흡을 한다고 말해도 뭐라 하는 의료진은 없다. 어짜피 패닉은 30~40분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니까, 그 이후에 다시 편한 마음으로 진료를 받으면 된다.
커피, 카페인 음료는 하루 전부터 먹지 않는게 좋다. (대부분 공황장애 환자는 커피를 못 먹으니까 원래부터 조심할 듯) 그런데 은근히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카페인이 들어간 것이 있으니까 이런 음식을 최대한 멀리하고 치과에 가면 좋다.
치과 방문하기 2~3시간 전에 가볍게 운동해서 몸을 나른하게 만드는 것도 효과가 있었다. 나는 배드민턴을 30분 정도 가볍게 하고, 3시간 쉬었다가 춘곤증처럼 나른해질 때 치과에 가니까 호흡과 맥박이 정상인처럼 평온했다.
낯선 공간이 패닉을 유발하니까, 좋든 싫든 자주 같은 치과를 방문하자. (치료할게 없어도 간다)
위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치과를 방문하면 한결 몸과 마음이 평온했다.
공황 장애를 모르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
공황장애, 패닉 발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이 나약해서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하는데,
5년간 이 병을 겪고 있는 내가 보기에, 이것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에 문제가 발생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때문에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줄줄 흐르는 경우, 그 미세 먼지가 안 보인다고 해서 콧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몸이 약해서 따뜻한 날에도 콧물이 나는 거라고 하지 않는다.
즉, 공황 장애도 일반인에게는 느낄 수 없는 것은 공황 장애 환자는 느끼는 독특한 매커니즘이 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공황 장애는 병원에 가면 고칠 수 있는 증상이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대한 공포감, 선입견은 버리길~
다행이도 많은 연구를 통해 공황 장애의 원인이 청반핵이라는 뇌의 특정 부분의 오동작 때문이라는 것과 이 오동작을 약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져서, 환자가 의지만 있다면 공황 장애 증상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그러니까 정신 병원을 갈지 말지 고민하지 말고, 알러지비염 치료하는 느낌으로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러 가면 된다.
다른 분야의 전문의와 다르게 정신과 전문의는
"세상에 이렇게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었나?"
"내 말을 너무 잘 들어줘. 감동이다!!"
이런 느낌으로 대화를 풀어나간다.
나이가 들어서 이곳저곳 아픈 곳이 생겨서 다양한 병원, 의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 지금의 정신과 전문의를 만난 것이 제일 축복인 것 같다.
내가 다니고 있는 병원 소개 (광고 아님)
아래 병원(의원)은 내가 공황장애, 강박증 등 치료를 위해 다니고 있는 병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 3년째 이 병원을 다니고 있고 항상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진심으로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하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의사가 고맙다.
건강한 사람 입장에서는 위 웹 사이트에서 소개된 진료비, 검사비가 비싸다가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정신적 문제로 죽음 앞까지 가본 사람이라면, 이 비용이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처음 2회까지만 진료비가 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그 뒤로는 거의 감기/몸살 진료하는 정도의 진료비만 내고 있다.
이것 저것 체크해서 진료 비용이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경험한 것에 의하면 처음 3개월 정도는 내가 의사와 인터뷰 할 때마다 거의 20분 넘게 시간을 쓰기 때문에 의사가 쓴 시간에 대한 비용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1~2회차 진료는 거의 학교 수업 수준으로 진료 시간이 길었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어떤 의사가 나에게 1회 진료에 20분 넘게 시간을 사용했던 적이 있던가? (외과 수술은 빼고... ^^)